게리 허스트윗 감독의 디자인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Objectified'는 하나의 물건이 디자인되고, 생산되고, 판매되어, 마침내 제 주인을 만나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 를 보여준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 있는 훌륭한 디자인은 사실 큰 주의를 끌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으로 느끼기 때문에 그게 디자인된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영화는 '물건'과 그것을 디자인한 사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맺는 복잡다단한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디터람스에서 조나단 아이브로 이어지는 인터뷰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조나단 아이브는 디터람스로부터 디자인에 있어 많은 영향을 받았고 거장이자 조나단의 스승인 디터람스는 진정으로 디자인을 하는 회사는 몇 되지 않는다며 그 중 하나가 바로 미국에 있는 애플이라고 한다.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부사장인 조나단 아이브는 단순히 애플 제품의 디자인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제품의 소재부터 공정 프로세스까지 전체를 아우르며 진두 지휘를 책임지고 있다. 과거 애플 디자인팀에 몸 담았던 에스딘져는 "조나단의 디자인팀은 단순한 디자이너라기 보다는 그 재료의 사용법과 생산 공정까지 바꿔버리는 혁신 집단" 이라고 했다. 스티즈 잡스 역시 하루에 한번 이상 조나단을 만나 의견을 교환할 정도로 또 하나의 디자인 팀원이기도 하다.
Objectified의 인터뷰에서 조나단 아이브는 오랜기간 동안 심사숙고를 거쳐야 나오는 디자인의 완성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 영화 Objectified 中 조나단 아이브 영상 (자막 있음)
조나단에게 있어 디자인은 외관이 아니라 바로 기능이고 소재이고 특별한 정보 전달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제품을 정말 잘 디자인하려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노트북에 장착되는 작은 표시등 하나도 그에게 있어서는 그냥 디자인되는 법이 없다.
그는 끊임없이 재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실험하면서 재료가 가진 속성을 공부하는데, 재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직접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애플은 재활용이 가능한 알루미늄과 같은 친환경 재료로 노트북을 만들게 되었는데 덕분에 그린피스에서 발표하는 환경보호 부분에서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으며 애플의 기업 이미지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지금의 맥북,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는 모두 소재의 변혁이 가져온 소중한 결과물이다.
애플의 제품은 만드는 것 자체가 까다롭다. 지금의 애플의 노트북, 맥북에는 어떠한 나사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음새 하나 없는 매끄러운 Unibody의 혁신적인 구조라는 것이다. 여기에 조나단이 생각하는 애플 디자인의 컨셉, 목적, 가치, 디자인, 기능이 모두 녹아있다고 보면 되는데, 보통 노트북을 만들 때 각각의 부품을 조립해 완제품을 만들다 보면 틈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기기는 두꺼워지고 원하는 디자인을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조나단과 그의 디자인팀은 제작방식에 있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혁신적인 디자인 공정을 고안해낸다.
출처: K BENCH
Unibody라고 하는 애플 특유의 공정은 말 그대로 하나의 알루미늄 통판을 깎아서 그 안에 부품을 집어넣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엄청난 수고를 요하면서, 대단한 모험이기도 하다. 공정에 조금의 오차만 있어도 값비싼 외장 틀 전체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말 그대로 최고의 공정과 품질을 요구한다. 그래서 애플은 우주선용 부품 제작에 쓰이는 컴퓨터 계측 장비를 동원하여 제작을 한다고 한다. 상태 표시등이나 충전 케이블 같은 외부 단자가 자리 잡는 자리까지도 이 장비를 통해 1마이크론의 단위까지 정밀하게 깎아 내는 작업을 거친다. 그는 이런 것이 바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애플의 다음 신소재는 알루미늄보다 강한 리퀴드 메탈일 것이라는 신빙성 있는 루머가 있다. 최근 애플 공식사이트가 리뉴얼되면서 상단 메뉴바가 현재 맥의 알루미늄 소재의 색상과 동일한 회색에서 좀더 짙은 반투명 그레이로 변경이 되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작년에 애플이 독점 사용권을 획득한 신소재 리퀴드 메탈과 같은 색상이라는 것이다. 리퀴드 메탈은 강도는 티타늄보다 강하고 금형사출시 후가공이 필요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상태로 완성도 높게 뽑아져 나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보다 완벽한 디자인으로의 변혁이 어떻게 이루어질지가 궁금하다.
출처: TIME
애플의 최강 디자인팀은 브레인스토밍 회의와 제작회의 두 가지 종류의 회의를 거친다고 한다. 브레인 스토밍 회의는 그야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회의인 반면 제작회의는 철저히 현실성을 바탕으로 진행을 하는 회의로 엔지니어와의 협의가 이루어지는 단계가 바로 제작회의이다. 애플은 디자인을 먼저 한 후 디자인에 맞게 기능을 넣는 작업방식을 도입하여 보다 디자인 혁신을 이루어왔다.
그 디자인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프로토타입 설계이다. 실물 크기의 프로토타입을 실제로 만들어 보고 이를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해 나가는 것인데 대부분의 제품이 시제품을 거쳐 나오지만 애플은 특히나 비슷하게 만드는 정도가 아닌 하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만든다고 한다. 최근 아이폰 5 출시를 앞두고 프로토타입 3개가 유출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은 어떤 제품이 탄생될 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계속적인 프로토타입 수정을 거치는 작업 중에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시제품을 많이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실패작이 많다는 것을 뜻하는데 조나단 아이브는 애플 디자인팀의 장점이 틀린 것을 추구할 줄 아는 호기심과 탐구정신에 있다고 했다. 실패작을 만드는 과정에서 얻게 된 경험은 디자인팀 전체의 학습능력을 발전시키고 더욱 뛰어난 디자이너로 성장시키며 당장의 실패가 나중에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애플은 잘 알고 있기에 실패작을 연발해도 새로운 프로토타입을 만드는데 부끄러움이 없다.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때 10:3:1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우선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10개의 포로토타입을 만든다. 10개의 프로토타입은 컨셉 자체가 완전히 다른 디자인으로 구성되고 완성된 프로토타입 중 3개를 선택한다. 그 후 몇 개월에 결쳐 선택된 프로토타입을 끊임없이 수정하여 마지막 하나가 최종 디자인으로 결정이 된다.
이렇게 지금 애플의 획기적인 IT제품들을 모두 관장하고 있는 조나단이지만 사실 그는 애플에 오기 전까지는 본인이 설립한 탠저린(Tangerine)이라는 회사에서 세면대나 욕조 등 욕실 용품을 디자인하는 제품 디자이너였다. 그렇게 컴퓨터 디자인 경험이 거의 없는 조나단을 애플로 전격 스카웃한 스티브 잡스의 안목도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애플의 제품군이 어딘지 모르게 욕실 디자인에 가까운 유선형에 매끄러운 표면인 게 바로 조나단의 그런 젊은 시절의 이력 때문이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맥은 최고의 디자인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그의 디자인은 도회적인 감각을 자극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도시인의 라이프를 이끌어가는 핵심 아이템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심플한 디자인 제품 속에 모든 것이 들어가도록 제품을 설계한 것이 바로 조나단 아이브이다. 스티브 잡스가 '천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디자이너들의 창의적 프로세스, 나아가 그들이 만든 제품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이르기까지 고찰하는 심도깊은 다큐로 Objectified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져있지만 여러번 봐도 볼수록 좋은 다큐이다. 나오토 후카사와, 카림라시드, 뷰홀릭 형제, 마크 뉴슨, 찰스 앤 레이 임즈 부부 등 수많은 디자인 거장들이 등장한다.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인터뷰가 이어진다.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디자인에 대하여 진지하다. 그리고 진실하다. 조나단 아이브는 이 많고 많은 좋은 디자이너들 중에 한 명이다. 그래서 애플식 디자인만이 해답이라고 할 수 없는 다양성이 가득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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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